최근에 사진을 찍으면서 하나 느낀 점이 있다면, 개인적인 감수성이 확실히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사진을 보면 개인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나중에 리뷰한 내 사진들은 강한 컨트라스트를 바탕으로 기계적으로 잘 정돈된 느낌을 주긴 하지만, 그 안에 인간다운 감성은 들어가 있지 않은 사진들 뿐이었다. 물론 그것은 최근의 개인적인 취향이 이론서나 카메라 기술서적들에 치우쳤고, 그 외에 문화적 요소들을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래선 안되겠다, 사람의 마음 안에 침전되는 그 농도 깊은 감성을 다시 한 번 찾아야 겠다, 라고 결심하고 다시금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들게 된 것은, 내 안에서 그녀 만큼 강하고 농밀한 감성을 글에 담아내는 작가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2. 천편일률적이지만, 그래도 가슴을 흔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모토 바나나'는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작가 중의 하나인데, 사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에는 스토리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의 뼈대를 잡고 있는 기초적인 설정등은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녀의 작품을 지탱하는 오브제들은 동일하다. 그녀의 처녀작인 키친에서부터 시작되는 바나나의 감성은, 종류는 달라질 지언정 '요리'라는 기초적인 주제로 통일되며, 그 위에 부서진 가족 안에 존재하는 미묘한 감정의 흐름과 '정상적이지 않은' 인간 관계 위에 쌓이는 기묘한 안정감으로 완성된다.
#3. 동거, 그리고 감정.
'데이지의 인생' 또한 마찬가지인데, 오꼬노미야끼를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데이지는 미혼모의 딸로서,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고 홀로 살아가고 있다. 비록 이모네 얹혀서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언제나 스스로의 삶을 독립시키고 싶어 하는 그녀는 근처 식료품 가게의 아들 집에 들어가게 된다. 이 쯤 되면 많은 독자들은 아, 이거 동거인이면 뭔가 이벤트가 있겠거니, 싶은 추측을 하게 되겠지만 그들의 사이에는 아무런 감정적 교류도 생겨나지 않는다. 그저 같이 살면서 만들어지는 동거인으로서의 감정이 전부이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감정 조차 데이지에게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에게 있는 것들을 소중히 하고, 부서지기 쉬운 일상을 애써 끌어안은 채, 스스로 홀로 서기를 꿈꾼다.
#4. 깨어지기 쉬운, 그렇기에 소중한
그녀의 어머니는 언제나 그녀를 지켜줄 것 같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야 만다. 그 때 데이지는 삶은 가볍고, 생명은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동거인의 전 여자친구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말에 자신이 지금까지 소중히 여겨온 일상을 버리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해야 하는 그녀에게 날아든 소식은, 어렸을 때부터 소중하게 여겨온 친구의 죽음이었다. 그럼에도 데이지는 꿋꿋히 버텨내고, 그녀에게 새로이 생겨난 일상을 보듬어 안는다.
#5. 일상의 소중함
계속해서 과거의 회상과 현재를 넘나드는 '데이지의 인생'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일상의 개인들이 가볍게 나누는 대화 안에서의 묵직한 안정감이다. 내 옆에 항상 있어주는 것.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가벼워서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그런 아슬아슬함 위에서 데이지는 언제나 그것들이 전하는 감성들을 강하게 의식하고 인지하며 즐기고 있다. 그래, 개인적으로 이런 감성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는 소재주의적인 사진보다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에 대한 강력한 감정이입. 그것이 요시모토 바나나의 특유의 감성이자, 그녀의 작품을 관통하는 기초골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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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의 인생


덧글
안녕학점 2011/11/10 17:41 # 답글
흐잉 바나나의 작품 속에 들어있는 지인의 죽음과 상실, 동거인과의 가까운만큼의 벽은 발딱 일어서는 주인공의 태도때문에 뭔가 작가 스스로 틀을 답습하는 기분이에요. 처음 잡았던 키친만 방에 들여놓게 되는 이유기도 하구요 ㅠ